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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녕 선생 생가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4길 36
석오 이동녕
(1869~ 1940)
천안에서 태어나 독립협회 참여, 서전서숙 설립,
신민회,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이후 임시 정부를 조직해
임시의정원의 초대 의장으로 선임, 이후 임시정부를
이끌다가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중국 쓰촨성 치장에서 돌아가셨고 현재 효창원에 유해가 모셔져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1935.11)
(왼쪽부터)
송병조/조완구/김구/이동녕/조성환/이시영/차리석
1940년 3월 17일 치장에서 치러진 이동녕 선생 장례식
이동녕 선생 생가지
이동녕 선생 생가지는 2005년 12월 보수 및 정비가 완료되고, 생가 복원사업이 이루어졌다.
더불어 우물, 포토존(이동녕 선생 좌상)등 구조물이
구성되었고, 생가에는 안방, 사랑채 등 옛 가구 및
인물 모형이 전시되었다.
(산류천석)
산류천석은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종내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이동녕 선생께서 평소 사자성어 친필휘호로 자주 사용하였으며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다.
첫째, 나는 돌이다. 돌같이 흔한 것도 없지요! 하찮은 존재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자신을 낮추는 겸허의 자세입니다.
둘째, 돌은 단단하다. 단단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립에 대한 의지의 단단한 표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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